피아노
최하연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책상위에 그려놓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어요
당신의 소원은 검은 건반에서 뛰어 내리는 것
그리하여
일생일대의 화음으로 나를 부활시키는 것
당신의 경전마다 엉터리 활자를 찍어 놓고
페이지를 봉인하고 있어요
나는 나의 다음 페이지가 무조건 될 수 없다는 것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신발을 벗으며
‘그것 참’ 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당신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당신이 있던 그곳을 향해 뛰어 오를 수 있다면
당신의 멈칫함이 나를 일깨우는 바로 그 주문이길
두들겨라, 두들겨라, (나의 건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나의,
나를 위한 마침표는 언제나 나의 시작 전에 찍히고 있어요
도돌이표 마디마다 당신은 돌아오고 있겠지요
가로지르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당신을 향한 나의 좌표를 잃게 만들고 싶어요
당신은,
또 다시 그 높은 절벽
검은 건반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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