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직소폭포 - 안도현

heystar 2013. 10. 13. 16:38

 

                                       직소폭포 

 

                                                                 안 도 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고 싶은 게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소 채찍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순간, 채찍 끝에 하늘이 쩍 갈라지며 적어도 구천마리의 말이 푸른 비명을 내지르며 폭포 아래로 몰려 올 것 같소

 

  그 중 제일 앞선 한 마리 말의 등에 올라타면 팔천구백구십구 마리 말의 갈기가 곤두서고, 허벅지에 핏줄이 불거지고, 엉덩이 근육이 꿈틀거리고, 급기야 앞발을 쳐들고 뒷발을 박차며 말들은 상승할 것이오 나는 그들을 몰고 내변산 골짜기를 폭우처럼 자욱하게 빠져나가는 중이오

 

  삶은 그리하여 기나긴 비명이 되는 것이오 저물 무렵 말발굽소리가 서해에 닿을 것이니 나는 비명을 한 올 한 올 풀어 늘어뜨린 뒤에 뜨거운 노을의 숯불 다리미로 다려 주름을 지우고 수평선 위에 걸쳐놓을 것이오 그때 천지간에 북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내기를 해도 좋소 나는 기꺼이 하늘에 걸어둔 하현달을 걸겠소

 

                                                                                                        -〈시안〉, 2009년 봄호에서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리운 여우>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닷가 우체국>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 1996년  시와 시학 젊은시인상 ,1998년 소월시문학상, 2005년 이수문학상. 2007년  윤동주문학상, 2009 백석문학상.

-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 민주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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