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문 인 수
나는 지금
동구 밖 홰나무 꼭대기에 서 있다
힐끔거리다가 마른 나뭇가지에 주둥이 비비다가
가숨패기 어깻죽지 털다가 꽈악꽈악 소리 지르다가도
잘 보인다
검다.
도무지 열어젖힐 수 없구나 온몸을 오욕칠정을
다 뒤져보아도 나는,
숯이다
나는 지금.
동구 밖 홰나무 꼭대기에 서 있다.
잘 보인다
더는 타오르지 못하겠다.
허허벌판으로 가야겠다.
번개 우레 쾅 쾅 목 놓아
목을 놓아, 그 끝 간 데 없는 울음이 돼야겠다.
젖어, 자야겠다.
[출처] 문인수 시집 『뿔』(민음사, 1992) 중에서
- 1985년 《심상》 신인상 등단-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 1990), 『뿔』(민음사, 1992)『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 2000) ,『배꼽』(창비, 2008) .
- 수상;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2007년 제7회 미당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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