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과
김 성 태
욕조 물이 출렁거리며 나는 깎여요
붉어서 불안한 나를 벗겨주세요
부끄럽지만 나는 한 알의 사과랍니다
내 안에 어둠이 있다고 말하지 말아요
모든 비밀은 껍질 안에 있으니까요
내 속엔 달콤 쌉싸레한 세계가 있어요
나사 푸는 방향으로 껍질을 깎아주세요
바람이 불때마다 계절을 겹쳐 입으며
나는 단단해져갔습니다 먼 뿌리에서부터
슬픔이 모이는 배꼽까지 원을 그리며
업의 당분을 가득 채웠습니다
둥글게 고민을 깎다가 생긴 원형의 탈모를 보세요
비어있는 두피에 개미들이 모여들면
사과 한 잎 베어 무는 소리가 날까요
해를 끌어 당겨 뜨겁게 익혀 만든
깊고 부드러운 속살을 보세요
달의 비누로 나를 씻겨 주세요
골똘하게 굴러가는 물방울들
흰 욕조 안에서 태초의 자세로
나는 나를 둥글게 안고 있어요
노란 누드가 정숙하지 않나요?
알몸일 때 나는 비로소 완전해져요
출처: < 다층 > 2010년 봄호에서
1986년 대전 출생
성균관대학교재학중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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