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bible
이 광 찬
* 요한계시록
매주 수요일 저녁 예배는 모기퇴치에 관한 강해가 있는 날이다. 마귀와 사탄, 귀신이나 악마들은 역시 모기의 일족이었다. 그들에게 계보나 족보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자식을 볼모로 자신의 학구열을 올리는 조금은 극성스러운 엄마들과 닮았다.
* 메시아
열대야로 후끈 달아오른 양철 지붕 아래, 한 사내가 열십자로 누워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제수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그는 늘 팬티바람이다.
* 방주
옆집 아줌마의 정체가 탄로 났다. 그녀는 동네에서 가장 악명 높은 첨탑의 권사였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에게 기생하는 충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설계와 내세에 관한 권유는 현생을 담보로 하는 사기였고, 총 66권으로 된 약관은 해독불가의 암호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까운 피를 몽땅 다 빨렸다. 종말에는 우르르 그녀 집에 몰려가 수혈을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녀가 퍼뜨리는 건 전염병이 아니라 복음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믿음이 생길 동 말동하기도 한다.
* 안개
서기관이 벽에 피를 토한 채 죽어 있다. 지나가던 바리새인도 온몸 뻣뻣이 굳은 채로 밤새 안녕했다. 앵앵거리는 신도들의 방언기도는 하나님께 보통 성가신 게 아닐 것이다. 인생이란 참 한치 앞도 모를 일이다.
* 천국
혓바닥은 여기서 한참을 멀다, 그곳이 가렵다.
* 보혈
가려운 곳을, 피가 나도록 긁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 아, 또, 피!
* 삼위일체
내 신앙에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그들은 보증이나 담보 없이도 거액의 믿음을 대출해주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찾아와 하루치의 보혈을 강탈해갔다. 신용은 불량이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베드로의 삼대독자, 베드로의 뼈아픈 후회. 원금이 이자를 낳고 이자가 또 이자를 낳는, 성경 속 족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후한 복리인 셈이니 그들에게 저당 잡힐 세간의 목록이 마침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인류 최초의 부채인 아담과 이브를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신은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한 대부업자이지만 일수와 사채는 복수이면서도 단수인, 독생자와 더불어 영원히 한 몸이었다.
계간 『리토피아』 2010년 겨울호 발표
2009년 계간 《서시》를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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