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소
박해성
우리가 물과 불과 돌을 숭배하던 시절
그 역시 별을 보며 운명을 점쳤을까,
십이월 오후 일곱 시
베르길리우스*와 마주 앉다
지금은 방황하는 4B연필을 다그칠 때
누가 꽃을 의심하고 정의를 팔고 사는가?
머리와 가슴만 남은
그가 불쑥 묻는다
죽어서도 눈을 뜨고 앉아있는 시인 등 뒤로
빙하가 녹아내린다, 화약내가 진동한다
신들은 다 어디 갔소?
뚝! 부러지는 연필심,
* 로마의 국가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 출처; 계간 『좋은시조』 2022,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