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

중남미불면클럽

heystar 2022. 3. 11. 12:03

          중남미불면클럽

 

                                    박해성

 

 

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별에서 그들은 만났다

복사꽃에 파묻힌 그 카페는 지도에 없다, 하지만

누구나 발병이 나기 전에 찾을 수 있어야 이야기가 된다

 

썬크림을 발바닥에다 발랐어, 글쎄

우스개가 아니라니까 혼이 새는 거 같아, 내 몸이

항아리처럼 금간 게 분명해, 레온 펠리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얼마나 많이 만들고 깨부수고 만들고

깨부수려 하십니까 창밖에는 분홍분홍 꽃잎이 분분하다

 

-아직 조금밖에 죽지 못했나이다 세사르 바예호가 고백한다

마가리타를 한 모금 마신다, 취해야만 세상이 보인다는 그는

알코올의 힘으로 방울뱀을 만나고 도둑을 만나고

부처를 만나고 를 만난다는데

백지 위에 성벽을 쌓느라 감성경화증에 걸렸다는데

 

지금 우리는 만개한 덧없음에 환호해도 좋은가?

니콜라스 기옌이 습관처럼 으쓱, 어깨를 추스른다 -넘어졌어

입술에 피가 났지, 앞니가 조금 깨졌어, 캄캄했다니까

운동화 끈이 풀렸다니까, 신과 발이 서로 뒤엉켰다니까

신도 잃고 길도 잃었다니까

 

묵직한 유리문이 여닫힐 때마다 어떤 이는 퇴장하고

누군가는 들어선다, 출입구에 매달린 금속 물고기가

잘랑잘랑49제를 건너는 당골네 방울부채처럼 쟁쟁하다

 

스무 번째 사랑을 앓는 파블로 네루다는

절반쯤 눈을 감고 0245분의 농익은 위기를 음미하는 중,

 

비몽사몽, 낡은 배낭을 멘 체 게바라가 도원을 등지고 멀어진다

 

 

- 출처; 계간  『문파』 2022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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