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2019년 가을호 <애지의 초대석- 이경림 작품론>
빅뱅과 토마토우주론
권혁웅
이 무한천공 한그루 시퍼런 토마토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저 붉은 것들을 가령 토마토라 불러보자 (중략) 어떤 터럭 하나가 한 떡잎을 만들고 두 떡잎을 만들고 세 떡잎을 만들고 저 팔만 사천의 떡잎을 만들어 한 순간 죽기 살기로 동그란 한 유구한 토마토가 되고야 만다 하자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분
1. 태초에 토마토가 있었다
무한천공에 우주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것을 토마토라고 불러보자. 사실은 앵두라고 불러도 좋고, 수선화라고 불러도 좋으며, 주황발무덤새, 쏘가리, 직박구리, 개미, 지렁이…… 라고 불러도 좋다. 토마토는 그 모든 것들을 끌어 모은 하나이자 그 모든 것들로 분기되어 나가는 하나이며, 마침내 우주를 가득 채워 우주의 외연과 자신의 윤곽을 일치시킨 것의 이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돌아보면 “수천수만 토마토”들의 끝없는 물음으로 흩어져버리는 것― 바로 신묘神妙의 다른 이름이다. “무한천공인 그 토마토는 사실 한 터럭보다 작은 토마토와 같다 치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만물은 토마토 아닌 것이 없으나, 토마토는 또한 다른 만상과 구별되는 “터럭보다 작은”것이기도 하다. 우주는 하나의 토마토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의 토마토는 우주가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의 우주가 “터럭보다 작은” 한 점 ―방울토마토보다도 훨씬 더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빅뱅이라고 부른다. 보라, 우주는 토마토에 빗대어졌으나 토마토는 그 우주에 포함된 터럭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2. 기원
빅뱅은 태초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던 시공간의 일점이 있었다. 그때, 그곳이 우주가 시작되는 순간이자 지점이었다. 토마토가 모든 곳에 있듯, 지금의 우주에서도 그 일점은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그때, 내가 수선화 노란 색에 세 들엇을 때
봄 아지랑이 파도치는 허기보다
일곱 살 계집아이가 백발노파가 되는 일보다 더 노랗게
세 들었을 때
(생략)
수선화 자태는 얼마나 애틋한지
세 살 적 처음 본 냇물처럼
채 도착하지 않은 햇살처럼 애틋해서
내가 그만 늙은 수선 한 잎으로 슬그머니 흘러내리고 싶을 때
- 「수선화를 묻다」부분
“수선화에 세 들었을 때”, 곧 내가 수선화에 내 초상과 삶과 기억과 소망을 의탁했을 때, 수선화의 그 노란색은 “일곱 살 계집아이”와 “백발 노파”를, 나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다 데리고 온다. 기원은 고ㅓ거지사가 아니다. 기원은 나의 현재를 설명하는 해명되지 않은 부재不在다. 그것은 현재를 낳고 미래를 투사하고 과거를 상기시키고는…… 사라진다. 거기에 의탁한 나도 그렇게 “세 살 적” 기억을 품은 채 “늙은 수선 한 잎으로 슬그머니 흘러내리”게 될 것이다. 이견린 시인의 시가 그토록 풍요로운 이미지들을 내장하고 있는 것도 이 기원의 힘이다. 기원은 무수한 이미지들을 산출하고서는 그것들의 베일 너머로 은닉된다. 이를테면 시인은 이렇게 쓴다.
골목은 끊임없이 시작만 됩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서 있기만 합니다
개나리는 끊임없이 담장을 휘감기만 합니다
개 한 마리는 끊임없이 오줌만 눕니다
벌써 반세기째입니다
- 「기억」부분
이것은 기억의 스냅사진이 아니라 무한히 재생되는 동영상이다. 보라, 이것들은 모두 현재시제로 적혀있지 않은가? 기억의 자리에서 골목은 여전히 입구를 보여주고 아이는 서 있고 개나리는 피어있고 개는 오줌을 누고 있다. 이것들은 무시간성이 아니라 영원성이다. 기원은 모든 것들을 현재형으로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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