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허공모텔 - 강영은

heystar 2016. 9. 26. 14:20


         허공모텔


                        강영은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출전_ 강영은 시집『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1956년 제주 서귀포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수상;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 『마고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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