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호 - 나의 시간은 늘 뒤죽박죽... =_+;;;
내가버린 남자 있다
한 철 사랑에 운다
불꺼진 창가에서
껍질만 매달려 운다
그믐달 삭은 관절에
숨어 운다
나도 운다
- 박해성 <귀뚜라미>전문 (시집 『루머처럼, 유머처럼』)
박해성 시인은 간명한 이미지와 시어로 사물과 사상의 핵심을 드러내는 시조의 속성을 잘 갈파해내고 있는 시인이다. 여러 가편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의 욕망, 여성의 주체성, 여성의 발화라는 이 컨텍스트에서는 <귀뚜라미>가 유념할 텍스트로 보인다.
"숨어 운다 나도 운다"의 음악성이 매우 아름답게 읽힌다. "내가 버린 남자"가 그를 버린 창가에 껍데기만 남아 울고 있다. 진달래꽃 뿌리며 님을 떠나 보내는,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서 돌아오라고 은밀히 기원하는, 혹은 모란이 지고 말면 삼백 예순 날을 내내 울고 기다리리라던 여성 화자의 목소리들이 제거된 공간에 귀뚜라미의 넋으로 환생한 버림받은 남자의 울음이 있다. 마침내 종장에 이르러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는 여성 주체가 등장할 뿐이다.
- [출처] 열린시학 계간평 - 은밀한 텍스트들; 삶의 비의와 여성의 몸 - 박진임. 『열린시학』2015, 겨울호에서
박진임
- 2004년 《문학사상》평론 등단.
- 저서; Vietnam War Narratives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2006: Peter Lang, New York).
- 현재;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박해성 리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시조 - 조선일보 (0) | 2016.07.23 |
---|---|
신간 시집 읽기 - 김남규 (0) | 2016.06.15 |
나의 추천시조 - 원용우 (0) | 2016.04.20 |
화제작, 화제의 초점 - 이경철 (0) | 2016.04.20 |
화제의 시조집 리뷰 - 『루머처럼, 유머처럼』 (0) | 201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