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위험수목 / 노국희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1978 전남 목포 출생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심사평]
과장이나 엄살이 없이 기억과 상처를 다루고 있는 ‘위험 수목’은 구도에 있어서는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과감한 언어 운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울어본 기억만 있고/소리를 잃은 말들”과 같은 긴장감 있는 상상력이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같은 도전적인 문장에 실려 전개되고 있다. 취의와 언어 운용 능력에서 안정감과 패기가 함께 드러나고 있어 짧지 않았을 시 쓰기의 이력에 신뢰감을 갖게 한다.(김소연, 조강석, 황인숙)
'신춘문예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6.01.02 |
---|---|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6.01.02 |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6.01.02 |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6.01.02 |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0) | 2016.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