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독
이문재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출전_『마음의 오지』(문학동네)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등
산문집; 『내가 만난 시와 시인』.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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