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삽화
민 병 도
달빛을 흔들고 섰는 한 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리움에 데인 상처 한 잎 한 잎 뜯어내며
눈부신 고요 속으로 길을 찾아 떠나는‥‥
제 가슴 회초리 치는 한 강물을 그렸습니다
흰 구름의 말 한 마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울음을 삼키며 떠나는 뒷모습이 시립니다.
눈감아야 볼 수 있는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닦아도 닦아내어도 닳지 않는 푸른별처럼
날마다 갈대를 꺾어 내 허물을 덮어주는 이
기러기 울음소리 떨다 가는 붓끝 따라
빗나간 예언처럼 가을은 또 절며 와서
미완의 슬픈 수묵화, 여백만을 남깁니다.
- 『화중련』2013, 상반기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