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었다 녹았다가 몇 번을 치렀을까
때 아닌 겨울장마에 몸살을 앓더니만
오늘은 거친 손으로 아기별을 안았네
한 생애 고비고비 눈물진물 씻던 곳에
텃밭이랑 꽃대들이랑 신명나는 하루해 손길
할머니 이랑이랑에 나비들이 밝힌다
* 이달의 심사평
- 시간을 깨로 형상화, 참신한 상상력 톡톡
1월이다. 다시 시작이다. 올 1월은 유달리 눈이 많아 모든 것을 덮고 다시 시작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이 백일장에도 새롭게 시작하려는 예비시인들의 젊은 기운이 넘쳐나고 있다.
올해 1월 장원은 김경숙씨가 차지했다. 보내온 작품이 모두 그랬지만 장원작 ‘깨를 볶다가 문득’은 완성도가 매우 높다. ‘새 달력의 일월은 생깨처럼 비릿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삶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를 잘 느끼게 한다. ‘밑불’은 이 시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첫째 수에서는 ‘깨’를 볶는 화자 자신이다. 그러다 셋째 수에서는 화자가 ‘깨’가 되고 일 년이라는 시간들이 ‘깨’가 된 화자의 ‘밑불’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치밀한 구성이다. 또 ‘낯선 곳이 궁금할 땐 한 번씩 튀는 거다’ 같은 참신한 이미지는 일상어로 구사하는 진술과 함께 눈길을 잡는다. 이쯤이면 수준급이다.
차상의 ‘가리봉동을 아십니까?’는 화려한 도시 한편에 감춰져 있는 이 시대의 아픈 현장 한 군데를 들춰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1970년대 이후 공장 산업의 대표 동네이라고 할 수 있는 가리봉동에는 3D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들이 많다. 생산직 근로자인 그들은 ‘매듭 붉은 아픔’들을 안고 ‘이방’에서 ‘너른 세상 한 끝을 자박자박 밟’으며 살아가고, 화자는 안타까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언어를 다루는 힘이 좋아 현실의식을 잘 담았다. 하지만 마지막 수에 있는 ‘오보록이 쌓인 봄눈’과 ‘스릇 녹고 있’는 ‘잔설’과의 관계를 애매하게 설정해 놓아 명쾌한 마무리를 못 짓고 있다. 시조는 잘 던지고, 잘 풀고, 잘 맺어야만 한다.
차하 ‘봄동’은 시적 긴장감은 다소 없지만 시조 가락을 잘 살렸다. 길어져 흠이 될 수 있는 둘째 수 중장도 별 무리 없이 읽힌다. 안정된 음보 덕이다. 긴 습작 기간이 있었으리라 짐작 된다. 하지만 시조는 정형시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긴장감 없는 느슨한 시는 눈길을 끌기 힘들다는 것도.
서해경·이흥열·이상목(캐나다)씨의 작품은 아쉽게 내려놓는다. 특히 서해경씨의 ‘이상, 현실을 읽다’는 끝까지 들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오승철·강현덕(집필 강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