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더듬다
유 종 인
흰 모란꽃을 잘못 보고 작약꽃이라 일러줬다
모란꽃이 지고 나서야 작약꽃을 마주쳤다
꽃이름
허공에 버리고
그 얼굴만 더듬었다
경계의 꽃밭
땅이야 나눈다지만 하늘을 나눌 수 없어
성북동 옛집 담장에 화분들이 올라있다
그분이 담을 넘을 땐
꽃눈 밖에 났겠다
마음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오늘은 술이나 받게
죽통竹桶처럼
비었다
묵집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도 좋아라
해묵은 틀니 같은 거
풀섶에 버려두고
아들아,
겸상을 하자
오늘만은
잇몸이다!
자(尺)
연못에 빠진 댓조각
숨 막헤게 심심했는가
지나던 버들치 불러 키들을 재주면서
제 키를 훌쩍 넘는 건
재도 않고
월척이란다
- 유종인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에서
1968년 인천 출생
시립인천전문대학 문헌정보학과 졸업.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등단.
2002년 농민신문 시조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아껴먹는 슬픔』『교우록』『수수밭 전별기』『사랑이라는 재촉들』
시조집;『얼굴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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