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조

얼굴을 더듬다, 외 - 유종인

heystar 2013. 12. 27. 19:20

얼굴을 더듬다

 

                                  유 종 인

 

 

흰 모란꽃을 잘못 보고 작약꽃이라 일러줬다

 

          모란꽃이 지고 나서야  작약꽃을 마주쳤다

 

꽃이름

 

허공에 버리고

 

그 얼굴만 더듬었다

 

 

경계의 꽃밭

 

  

땅이야 나눈다지만 하늘을 나눌 수 없어

 

성북동 옛집 담장에 화분들이 올라있다

 

그분이 담을 넘을 땐

 

꽃눈 밖에 났겠다

 

 

 

        마음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오늘은 술이나 받게

 

죽통竹桶처럼

 

비었다

 

묵집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도 좋아라

 

해묵은 틀니 같은 거

풀섶에 버려두고

 

아들아,

겸상을 하자

오늘만은

 

잇몸이다!

 

  (尺)

 

 

연못에 빠진 댓조각

 

숨 막헤게 심심했는가

 

지나던 버들치 불러 키들을 재주면서

 

제 키를 훌쩍 넘는 건

 

재도 않고

 

월척이란다

 

                          - 유종인 시조『얼굴을 더듬다에서

1968년 인천 출생
시립인천전문대학 문헌정보학과 졸업.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등단.

2002년 농민신문 시조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아껴먹는 슬픔』『교우록』『수수밭 전별기』『사랑이라는 재촉들』

시조집;『얼굴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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