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 쓴 서정시집 『유리병 속의 편지』를 읽으며
이 건 청
최근, 나는 오래 전에 국내에서 번역 소개된 바 있는 얄팍한 번역 시집 한권을 무한한 감동 속에서 읽었다.『유리병 속의 편지- 뿌리 뽑힌 유대인의 큰 노래(Grober gesang vom ausgerotteten jüdischen volk』 / 이작 카체넬존( Katzenelson, Jizhak)지음, 전영애 옮김. 한마당.1999)- 이 시집은 가스실에서 죽은 한 유대인 시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쓴 서정시집이다. 시인이 시시가각 닥쳐오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이 시의 원고는 그가 가스실에서 즉은 뒤 아우슈비츠에 갇힌 나머지 사람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살아남았으며 1945년 파리에서 간행되었다.
오래 전에 간행된 이 얄팍한 번역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시가 무엇이고 왜 시인은 시를 쓰는가? 사람이 당면한 존재의 위기 속에서 시인은 어떤 시를 써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숙고하고 숙고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내가, 이 얄팍한 시집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시가 보여주고 있는 이상한 행태들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서구시가 겪었던 일탈의 현상들이 6, 70년 후 이 땅에 아방가르드의 이름으로 써지고 있고, 또 그것을 새로운 시의 경향으로 추종하고 신념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에 생각이 닿게 되었다.
아우슈비츠의 참담함에 절망한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죄악”이라고 탄식했다는 이 말이 금과옥조처럼 여기저기 인용되면서 마치 ‘서정시’를 부정하고 일탈의 시를 써야하는 명분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계적인 석학 아도르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오늘날 서정시라는 것을 창작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서정시란 이미 죽어버린 장르이다. 그러므로 현대는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시 그러니까, 아방가르드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를 써야 한다.-” 이렇듯 우리 시대에 있어서 서정시란 쓰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규정해서 추방해버리고 그 대신 포스트모더니즘 시만을 써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데 아도르노의 언급을 자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젊은 비평가들조차 이에 동조하여 같은 논리의 글을 재생산해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우리 시단에서 널리 운위되고 있는 위의 언급 즉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말은 사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잘못 인용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Nach Au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 이 말은 아도르노가 1949년에 쓰고 1951년 한 사회학 논문에서 발표했던 논문의 한 문장이다.(Th. Adorno,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in: Prismen, München 1963, 26면). 이 글의 번역 인용자는 독일어 '시‘(Gedicht)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서정시’라는 단어로 슬쩍 바꿔치기하여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는데 이용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어 ‘Gedicht’는 ‘시’ 일반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거기에는 넓은 의미로 ‘문학’( Dichtung)이라는 뜻까지도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아도르노가 굳이 ‘서정시’만을 지적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당연히 ‘lyrisches Gedicht’ 혹은 ‘Lyrik’라는 용어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Gedicht’라는 말로써 아도르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상을 본 뒤 인간성이 말살된 이 비극 앞에서 ‘시’ 혹은 ‘문학’이 이 시대에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져 탄식을 던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급을 왜곡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아도르노가 딱히 ‘서정시’만을 부정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를 옹호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설령 아도르노가 한국의 인용자들처럼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치더라도 그의 철학적 입장으로 비추어 볼 때, 결코 아방가르드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옹호할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 철학자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이성옹호론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토대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정 반대 입장에 서 있는 현상학이나 해체주의 철학 즉, 반 이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성주의 철학자인 아도르노가 반이성주의 문학을 옹호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그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의 죽음을 목전에 둔 절체절명 속에서 한 권의 서정시집이 쓰여진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한다.
시집을 쓴 이작 카체넬존은 1886년 폴란드 민스크 근처 코레리취에서 태어났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Ghetto)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유대인들은 머지않아 직면하게 될 절멸의 위기를 직감하고 자신들이 죽고 난 뒤 그들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 줄 시인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들이 겪는 수난을 시로 써서 남겨줄 것을 당부한다.
그들은 내포와 함축을 담아낸 시의 존재양식이 지닌 영원성을 신뢰했던 것이고, 시가 직관과 영감의 교호작용을 통해 가장 본질에 닿을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소망을 한 몸에 받은 이작 카체넬존은 죽음에 직면한 위기의 순간들을 깨알같이 베껴 시집 여섯 부를 만들었다. 1943년 10월부터 1944년 정월까지 시를 썼고, 그러다 그가 소지했던 가짜 여권이 밝혀져 1944년 5월 1일 아우슈비츠로 이송당하여 가스실에서 죽었다. 원고는 남은 사람들에 의해 유리병에 넣어 수용소 마당의 전나무 뿌리 밑에 파묻었고, 앏은 종이에 베껴서 여행가방 가죽 손잡이 안에 넣어 꿰매기도 했다. 이 원고 중 일부가 바깥 세상에 전해져 1945년 파리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가스실로 옮겨져 재가 되어버린 시인이 남긴 시를 아우슈비츠 밖,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살려 내 보내려는 남은 사람들의 고심참담으로 그 작품을 죽음 속에서 끄집어내서 기록문학으로 살려낸 사람들의 노고는 더욱 놀랍다. 남은 사람들 이작 카체넬존의 작품을 살려내기 위해 작품을 밀봉한 유리병에 넣어 마당의 전나무 밑에 묻었으며, 감옥 밖으로 나가는 여인의 가방 끈에 엮어 맸다. 그들 자신도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삼엄한 감시 속에서 했던 일은 문학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문학은 읽혀짐으로써 창작 의도가 완결되는 양식”이라는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이고, 시가 가장 깊은 인간 영혼에 본질적 감응을 주는 장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첫 번째 노래’부터 ‘열다섯 번째 노래’로 엮어져 있고 각 부가 또 15개씩의 시로 되어 있어 모두 225편의 시로 쓴 시집이다. 225편의 시의 대부분, 4행연으로 되어 있고 운율을 갖추고 있다.
“너 노래하라! 저미어진 하프를, 네 벌거숭이 하프를 잡아라, 노래하거라
어지러운 현(絃)들 속으로 네 손가락을 넣으라 하나의 노래를 위하여
고통으로 부서진 가슴들을 노래하라. 이 유럽에게 아직 노래 들려주라
그 맨 마지막 유대인의 위대한 노래를 들려주라”
-「첫 번째 노래-1」
말들은 아무 예감도 없다. 휘어지는 노볼립키 골목을 돌아 착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울타리 쳐진 하역장으로, 거기는 이미 텅텅 비워진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차량들, 차량들은 우리를 멀리, 멀리 실어간다
그리고 내일이면 다시 텅텅 비어서 돌아온다. 더는 말을 못하겠다. 할 수가 없다
-「열세 번째 노래-15」
시인은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이 비인간적인 인간 살육의 현장을 증언하는 시편들을 썼다. 그런데, 그가 쓴 시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것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형시로 다듬어져 있고 아름다운 이미저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서정 시편들이 죽음의 현장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작 카체넬존은 비탄에 빠져 감정의 폭풍 속으로 침잠해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시가 지니는 오묘한 율조와 이미지를 추구해 아름다운 서정의 언어로 절망의 상황을 형상화해 보여주었다. 이작 카체넬존은 시의 언어가 가장 본질적인 언어이고 존재를 참으로 구현해 보여줄 수 있는 희망과 구원의 양식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작 카체넬존의 처지와 입장을 정반대로 폄하하고 있는 시도 있다. 다음의 시는 근래 우리나라의 어느 노시인이 문예지의 지면에 창작시로 발표한 <시는 없다>란 제목의 시이다. 이 시인은 이 시대에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퍽 불편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는 지금, ‘시를 고집하는 것이 폭력이고, 우리 시단엔 이런 의미에서의 조폭’이 너무 많다고 개탄하면서, 아래와 같은 산문을 시로 발표하고 있다.
시가 있는 게 아니라 시론이 있고 시론은 해석이고 해석은 역사의 산물이다. 역사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해석은 없고 해석은 언제나 역사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시의 본질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고 시라고 명명하는 목소리, 시라고 정의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무슨 시의 본질이니 가치니 진리니 하며 폼을 잡는 시인들, 평론가들 이론가들을 보면 한심할 뿐이다. 요컨대 시는 없고 시론이 있지만 시론은 역사가 생산한다.
우리가 쓰는 시는 근대의 산물이고 근대 이전에 이런 이상한 글쓰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탈근대, 혹은 후기 현대에 살고 이런 시대엔 미적 자율성, 시적 언어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근대시론이 맥을 못추고 시와 비시의 경계도 모호하고 도대체 시를 평가할 기준이 없다. 그러나 이런 기준의 부재, 무가 자유와 통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통한다.
현대시의 역사는 끝나고 시론도 끝났다. 남은 건 시에 대한 자의식이다. 이제 시론은 철학이고 시 쓰기는 시에 대한 방법론적 회의, 자기 성찰 자기비판이다. 내가 본질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동기로 한다. 시와 비시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 시를 고집하는 것은 폭력이고, 우리 시단엔 이런 의미로서의 조폭들이 너무 많다.
- <시는 없다>
이 시의 작자는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의 이론을 논리적 문장으로 해설하고 있는 셈이므로 다른 부언은 필요 없을 줄 안다. 일찍이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죄악’이라는 전제를 들어 정통시의 주류를 이뤄온 서정시를 비판하면서 해체의 시, 일탈의 시를 지향해 온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아도르노의 원문은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것은 죄악”이라는 의미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치의 참극을 보면서 ‘시’나 ‘문학’의 무기력함을 탄식했던 것이지, ‘서정시’만을 따로 폄하한 것이 아니었다.).
시인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어떤 시를 쓰든,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속하는 일이다. 시론에 맹종해서 시를 버리든, 자신이 해온 평생의 모든 시를 부정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 개인의 취향이요 소관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시 속에서 희망을 희구하면서 하이얗게 밤을 지새고 있을 많은 시인들이 있다. 그리고, 시 속에서 무한한 감동을 공유해가면서 밝은 희망을 쌓아가는 수많은 시의 독자들이 있다. 그런데도 자신의 편향된 시관을 근거로 시의 ’본질주의자’들을 힐난하면서 ‘조폭’으로까지 매도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해도 온당한 일이랄 수 없을 것이다.
[출처]아우슈비츠에서 쓴 서정시집『유리병 속의 편지』를 읽으며|작성자 lgc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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