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기상도 - 김기림

heystar 2013. 7. 29. 12:10

       기상도氣象圖

          -세계의 아침

  

                         김 기 림

 

 

  비늘

  돋힌

  해협(海峽)은

  배암의 잔등

  처럼 살아났고

  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

 

  바람은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

  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누었다.

 

  헐덕이는 들 우에

  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

  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

  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

  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

 

  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

  차장(車掌)의 신호(信號)를 재촉하며

  발을 굴르는 국제열차.

  차창마다

  [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

  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

  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

 

  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

  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汽笛)에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전서구(傳書鳩)들은

  선실의 지붕에서

  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 [스마트라]의 동쪽. …… 5 [킬로]의 해상(海上) ……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

  적도(赤道) 가까웁다. …… 20일 오전 열 시. …… 

 

 

  ㅡ 시집 『기상도』(장문사, 1936) 

 

 

1908년 함경북도 학성군 학중면에서 출생. 서울 보성고보와 일본 니혼대학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 영어영문과 졸업. 1930년대 초반에 [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문단에 등단. 문학 활동은 구인회에 가담한 1933년경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영미 주지주의와 이미지즘에 근거한 모더니즘 문학 이론을 자신의 시에 도입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은 문학사적 공적으로 남아 있음. 모더니즘 이론에 입각하여 창작과 비평에서 두루 활동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다소 정치적 편향을 보이기도 했음.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강의하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됨. 대표 저서로는 시집으로 『기상도』,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새노래등과 수필집 바다와 육체등이 있고,  비평 및 이론서로문학개론, 시론, 시의 이해등이 있음.

[출처] 웹진 시인광장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라 - 문성해  (0) 2013.09.16
나무 아래서 - 임동윤  (0) 2013.09.16
창가에 앉아 1분 - 이기철  (0) 2013.07.29
나무 금강 로켓 - 이영광  (0) 2013.07.05
서울 - 서효인  (0) 2013.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