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수상작

2012년 제7회 윤동주문학상 수상작 <내가 살던 집터에서 마지박 기념촬영>외 - 김용택

heystar 2012. 10. 31. 20:05

      내가 살던 집터에서 마지막 기념 촬영

 

                                                      김 용 택

 

 

 

 

논두렁콩이 잘되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런닝구, 어머니의 살은 콩알처럼 햇볕에 탄다.

콩은 낫으로 베지 않고 호미로 꺾는다.

뿌리째 뽑히기도 해서 흙을 탈탈 털며 핸드폰을 받는다.

, , , 그래 잘 있다. 너는? 올해는 콩들이 다닥다닥 붙었구나.

그래,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게 마련이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머니, 그건 이제 야생 감나무에게도 해당되지 않은 옛말입니다.

나는 다달이 작고, 넘을 고개는 오를수록 까마득하게 가파르기만 합니다.

내년이 있어서, 농사꾼들은 그래도 그 말을 믿고 산단다.

퇴근할 때 붓꽃을 꺾어 들고 강 길을 걸었다.

아내는 강 건너 밭둑에서 나물을 뜯고

아이들은 보리밭 매는 할머니 곁에서

강 건너온 흰 나비를 쫒고 놀았다.

아내는 할 말이 많은 날은 오래오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문 산을 머리에 이고 징검다리를 건너면

강물에 어른거리는

햇볕이 이마에 따갑다는 것을

아내도 알게 되었다. 바짝 메마른 입술,

하얀 수건을 쓰고 아내가 마당에 앉아 콩을 털 때쯤이면

마른 감잎들이 마당 구석으로 끌려갔다. 아이들은 달아나는 콩을 줍고

어머니는 강 건너 밭에서 콩을 가져왔다.

뒤틀린 마른 콩깍지 끝에서 불꽃이 일고 콩깍지가 터지면서 다시 뒤틀리고

한쪽 얼굴이 까맣게 탄 콩이 튀어 부엌바닥으로 떨어졌다.

강변에서는 찔레꽃 붉은 열매가 익는다. 콩이 많이 열기도 했구나.

올해도 빈 콩깍지같이 빈 집 몇 채가 저절로 폭삭 내려앉으며,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고 마을에서 사라졌다. 집이 사라지니,

저쪽 들길이 문득 나타나 텅 비는구나.

허망하다.

벌레 먹은 콩잎, 그 구멍으로 햇살이 새어 들고,

구멍이 숭숭 뚫린 런닝구 사이로 어머니의 살은 지금도 붉게 탄다.

우리 집 바로 뒤 당숙모네 집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


                                           - 2012년 제7회 윤동주문학상 수상시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 1982년 창작과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외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섬진강』, 『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그리운 꽃편지』,『그대 거침없는 사람』,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등.

- 산문집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작은 마을』『섬진강 이야기 1, 2』등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 수상; 김수영 문학상, 김소월 문학상, 2012년 제7회 윤동주문학상 수상.

                                                                                                                  [출처]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