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포엠

드라큘라의 연인

heystar 2012. 7. 7. 14:00

 

                                 

                                                                                           그림/박해성

 

 

   드라큘라의 연인

 

                          詩/ 박 해 성

 

 

컹컹 짖는 어둠 속 굶주린 늑대가 울면

가슴에 꽃 대신 칼을 꽂고 눈 뜨는 신부,

여권도 그림자도 없이

13월의 국경을 넘어

 

피를 찾아 헤맨다. 미친 듯, 홀린 듯이

 

은유의 망령들이 횡행하는 백지 위에

 

손톱 다 닳아빠지도록 밤새워 무덤을 파고

 

재앙 같은 흡혈은 거역할 수 없는 걸까?

도지는 갈증마저 만우절처럼 사랑해야지

 

급소다,

밑줄 친 오류에

송곳니를 깊이 박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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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장르에서는 생소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낯설게 하기’에 도전해 본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이미 잔혹하고 기괴한 영상이나 픽션, 혹은 엽기적인 온라인게임 등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이 정도로는 싱겁고 지루하고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현대시조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착하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요소들만이 문학의 주체는 아닐진대…

 

   자칫 관념으로 흐르기 쉬운 時調가 영원히 죽지 않는 흡혈귀처럼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상상을 해 본다. 나는 이미 그에게 목을 물린 백작의 신부 - “꽃 대신 칼을 꽂고” 비장하게 허구의 세계로 들어선다.

  

  미친 듯 밤을 새우며 무덤을 파는 이 광기는 내게 흡혈행위와 버금가는 고통이자 희열이다. 거짓으로 진실을 살려내야 하는 시인은 드라큘라처럼 저주받은 양식으로 연명하는 부족이기에 나는 만우절과 부활절을 이음동의어쯤 생각하기로 한다.

 

   급소에 송곳니를 박는 퇴고과정은 이 밤도 나를 깨어있게 하는 에너지다.

 

   “詩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시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에서 오늘은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인용하기로 하자. 이는 지금 나의 심중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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