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포엠

나는 그를 배트맨이라 부른다.

heystar 2012. 7. 4. 21:38

 

                                                                                                                                                          사진/박해성

 

 

나는 그를 배트맨이라 부른다

 

                      박 해 성

 

 

그 사내 고층빌딩에 박쥐인 양 붙어있다

지구를 구하러 온 신의 사도는 아니지만

오늘도 말갛게 닦는다, 현기증 나는 세상을

 

도원에 이른다는 강물일랑 보너스다

여의도 우회도로며 경마장 가는 샛길까지

잡힐 듯, 하마 잡힐 듯 발치께 훤하건만

 

유리창에 비친 하늘, 하늘보다 하늘같아

가끔씩 익명의 새가 머리부터 돌진하지,

아무나 통과할 수 없는 벽인 줄도 모르고

 

한 오리 마음조차 걸 데 없는 허공에서

지고지순 온몸 바쳐 햇살경전 새기는 이,

용서의 장을 쓰는지 낮달 멈칫, 숨죽인다

 

 

******************************************************

 

 

   인간이 하늘을 나는 꿈을 실행에 옮긴 것은 어쩌면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에게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준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신화나 꿈이 아닌 현실에서 우리는 하늘을 새처럼 날게 되었다.

 

   이렇듯 환타지라고 생각한 신화나 영화의 한 장면이 우리 앞에 현실로 현현할 때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 진짜 전쟁이 컴퓨터 워게임처럼 버튼 하나로 조정되는 시대, 우리는 인류의 카오스를 해결해 줄 히어로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의 이러한 소망은 <마징가Z> <태권V>를 비롯해 <슈퍼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배트맨>등등 초인간적인 영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여 <배트맨>은 비상식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신보다 가까이에 있는 초인간적인 힘의 실체 - 누군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바람같이 나타나는 정의의 사도, 그가 바로 박쥐처럼 검은 날개옷을 입고 종횡무진 정의를 실현하는 히어로라는 설정인데…

 

   가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가 정당성을 획득한다면 ‘힘에는 힘’이 정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러나 어쩌랴, 아둔한 나의 눈에는 외줄 로프에 매달려서 “현기증 나는 세상을 말갛게 닦는” 저 사람이 한 가정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나아가서는 지구를 구할 <배트맨>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부디 그가 유리창에 비친 하늘에 이마를 깨는 우발적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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