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해성
마니산의 봄
詩/박 해 성
정상을 꿈꾸다가 일몰에 갇힌대도 반성이나 후회 따위 않기로 작정했지,
남들은 하산할 무렵 가풀막을 오른다
빈 둥지만 덩그런 졸참나무 겨드랑이 고뿔 걸린 낮달이 쿨럭쿨럭 동행이다
그래도 너무 외로워 괜스레 단장 짚고
산허리에 주저앉아 갈증을 다독인다
달디 단 물 한 모금 뿌리에 닿았는지 산철쭉 목젖 축이고 툭툭, 말을 건네건만
그만 돌아설까보다, 갈수록 고달픈 길
얼마나 더 살아야 흔들리지 않으려나, 박새가 혼잣말처럼 쫑알쫑알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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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참 어이없다. ‘남들은 하산할 무렵’ 나는 가풀막을 오르기로 결심했으니,
갈 길은 멀고 해는 얼마 안 남았지만 ‘반성이나 후회 따위 않기로 작정’하고 일몰 속으로 혼자 나서는 무모한 산행, 기어이 정상까지 오르겠다는 꿈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시간 - 혼자 산행을 해본 사람은 알리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 절절한 외로움을
울퉁불퉁한 돌멩이에 발부리도 채이고 썩은 낙엽이 겹쌓인 길에서는 헛발 딛어 중심을 잃기도 했지 - 쉬엄쉬엄 가자, 스스로를 달래기도 여러 번인데…
일기예보에도 없는 돌풍을 만나 새로 산 모자를 날리거나 장벽처럼 길을 막아선 견고한 바위 앞에 서면 그만 둘까, 흔들리기도 하지만 죽은 듯 겨울을 지낸 늙은 나무에서도 미친 척 피어난 꽃들이 저토록 흐드러진 계절,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모셨다는 성소, 강화 마니산을 오른다.
철없는 시가 무작정 따라 나선다 - 난 아무래도 죽을때까지 그를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전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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