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 박주택

heystar 2012. 1. 25. 15:40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박 주 택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문학과지성사, 2004) 중에서

1959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등.

시론집; 『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 정서의 복원」

평론집; 『반성과 성찰」「붉은 시간의 영혼」등.

수상; 제5회 현대시 작품상(2004), 2005년 2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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