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박 주 택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문학과지성사, 2004) 중에서
1959년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꿈의 이동건축」,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사막의 별 아래에서」등.
시론집; 『낙원 회복의 꿈과 민족 정서의 복원」
평론집; 『반성과 성찰」「붉은 시간의 영혼」등.
수상; 제5회 현대시 작품상(2004), 2005년 제2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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