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심 보 선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죽으면 나는 개의 형제로 돌아갈 것이다
영혼도 양심도 없이
짓기를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네발짐승의 곁으로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인간 형제들과 함께 있다
기분좋은 일은
수천수만 개의 따뜻한 맨발들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뚜꺼운 책을 읽을 때에
나의 눈동자에 쿵쿵쿵
혈색 선명한 발자국들이 찍힌다는 사실
나는 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인간에게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보자
두 개의 심장을 최단거리로 잇는 것은?
직선?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없이
도리없이 끌어안는다
사랑의 수학은 이르키메데스의 점을
우주에서 배꼽으로 옮겨온다
한 가슴에 두 개의 심장을 잉태한다
두 개의 별로 광할한 별자리를 짓는다
신은 얼마나 많은 도형들을 이어붙여
인간의 영혼을 만들었던지!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무 無에서 무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이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 머물기 위하여
-계간 『시안』 2011년 봄호 발표
1970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同 대학원,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졸업.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
2009년 제16회 김준성 문학상 수상.
제4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시' 賞 수상.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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