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 11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도둑키스
황 병 승
카페 문을 열고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가 들어섰다
탁탁 발을 구르며
마치 남자의 등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에스프레소
진하고 빠르게
매부리코 흰 콧수염 남자의 손가락이 메뉴판 위를 스치듯 지나갔을 뿐
마치 말이 필요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진하고 빠르게
말굽에 짓밟히듯이
매부리코 흰 콧수염 남자의 불타는 입술이 여자의 입술을 덮쳤고
붉은 조끼의 놀란 여자는 포켓 속의 움켜쥔 두 손에서 쿵쾅거리는 두 개의 심장을 느꼈다
서른 살의 가슴이
뿌리째 흔들렸나보다
창밖에는 때아닌 굵은 눈발이 흩날리고
몰려든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들이
창가에 서서 카페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혀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진하고 빠르게
채찍에 휘감기듯이
붉은 조끼의 놀란 여자는 움켜쥔 두 개의 심장이 붉게 달아오른 두 볼에서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어느새 창밖의 눈발은 그쳤으며
매부리코 흰 콧수염의 남자들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마치 남자의 급작스런 퇴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자는 포켓 속에서 간신히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라이터…… 라이터…… 라이터……
계간 『문학동네』 2010년 여름호 발표
1970년 서울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2003년 <파라21> 신인문학상 시 부문 등단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랜덤하우스중앙, 2005)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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