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시인의 병풍 - 이성선

heystar 2024. 12. 18. 15:09

시인의 병풍屛風

 

                 이성선

 

밤마다 나는

반은 가리고 반은 드러난

처용 아내, 고운 가랑이

달 솟는 해협海峽에

내려가 

 

병풍을 치고

신기스럽게 악기 소리 열리는
병풍을 치고

 

꽃나무에 내려

꽃잎을 열고 들여다보면

밤중에 그는 미쳐 있을까 

 

무의巫衣를 걸치고

나와 산중을 드나든다.

풀잎과 나무를 드나든다.

 

좌절挫折의 밤마다

험준한 산악을 오르며

울부짖던 음성도

 

절망에 쓰러져

황혼을 수 놓다가 , 다시

오지의 풀밭에 내려

비밀히

일월日月의 출몰出沒을 다스리던 

그의 손도

지금, 악기소리 삐걱이는 풀잎을

건너

내 가슴에 내려, 황홀히

문채文彩의 비를 뿌리고

 

용들이 천공天空 가득

포효하며 날으는

병풍屛風 안

 

엄숙히 고개 숙인

그의 침묵沈默 아래

처용 아내 고운 가랑이

해협海峽에,

향香그러운 피리소리

달이 뜨고,

 

- 출처; 이성선 시전집시와시학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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