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이중섭의 팔레트 - 신준희
알코올이 이끄는 대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나는 자주 까먹었다
날마다
다닌 이 길은
처음 보는 사막이었다
- 당선자 신준희 약력 △1955년 전북 고창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심사평]
응모작 늘어 심사과정 흐믓 - 연시조 유행속 단시조 눈길
응모작이 크게 늘었다. 감사한 일이다. 시조에 매력을 느끼는 지망생의 수가 그만큼 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형식을 운용해내는 능력도 대부분 수준 이상이어서 쉽게 제외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몇 번을 거듭 읽은 뒤 ‘구름평전’, ‘블랙커피 자서전’, ‘모감주나무 문법’, ‘봄의 온도’, ‘이중섭의 팔레트’가 남았다.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을 살피며 개성 있고 참신한 작품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다 최근 당선작 유형으로 굳어져 버린 안이한 연시조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기본형인 단시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중섭의 팔레트’를 뽑기로 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선자의 다른 작품인 ‘개성댁’, ‘개심사 석탑’ 등 연시조에서 받은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
이중섭이란 이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소재로는 식상하다. 그러나 화가의 아내가 서귀포시에 기증한 팔레트에는 아직도 물기가 마르지 않아서 이렇게 섬뜩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알코올이 환기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삶, 정거장이 은유하는 생의 여러 고비를 어느 날 이중섭은 사막처럼 느꼈을까. 이러한 상상은 화자 한 사람만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가파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의 풍경이다. ‘날마다/다닌 이 길은//처음 보는 사막이었다’의 극적인 비약은 얼마간의 난해성이 시의 매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절창이 아닐 수 없다.
당선자가 오랜 연마를 통해 얻은 결실을 읽으며 그 이상의 작품으로 시조시단의 내일을 열어갈 것이라 확신하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 이우걸·이근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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