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잘 가 - 박지웅

heystar 2016. 12. 13. 11:56



    잘 가


                박지웅



여자의 혀는 정직하고 차가웠다

입에서 나오는 가장 낮은 온도 잘 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처럼 건넨 잘 가

나는 잘 가를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뒤 잘린 토막의 말

잘 가는 피가 빠지는데 몇 달이 걸렸다

몇 달째 꿈쩍하지 않는 잘 가

가끔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잘 가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로 썩어가는 잘 가를

꺼내어 몇 번 삼키려 했으나

오래된 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온통 사후의 세계

나는 냉장고에 심장을 넣고 기다린다

내 혀는 아직 핏물이 덜 빠졌다


- 『현대시학』2016, 12월호


1969년부산 출생.
- 추계예술대학교 졸업.
- 2004년 『시와 사상』신인상 등단.
-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 2016 제11회 지리산문학상  외

-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쪽으로 다섯걸음 - 전동균  (0) 2016.12.31
당신의 부지깽이는 어디 있나요? - 오세영  (0) 2016.12.23
死者의 書 - 유병록  (0) 2016.11.21
쌍계사, 동백 - 권경인  (0) 2016.10.08
해바라기 - 김경후  (0) 201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