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박지웅
여자의 혀는 정직하고 차가웠다
입에서 나오는 가장 낮은 온도 잘 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처럼 건넨 잘 가
나는 잘 가를 받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앞뒤 잘린 토막의 말
잘 가는 피가 빠지는데 몇 달이 걸렸다
몇 달째 꿈쩍하지 않는 잘 가
가끔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잘 가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로 썩어가는 잘 가를
꺼내어 몇 번 삼키려 했으나
오래된 관처럼 입이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는 온통 사후의 세계
나는 냉장고에 심장을 넣고 기다린다
내 혀는 아직 핏물이 덜 빠졌다
- 『현대시학』2016, 12월호
- 2016 제11회 지리산문학상 외
-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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