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빠져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번 되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시집 『소』(문학과지성사, 2005) 중에서
-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 중앙대 영문과 졸업
-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꼽추」당선
- 1992년 시집 『태아의 잠』1994년『바늘구멍 속의 폭풍』1999년『사무원』2005년『소』
- 1995년 김수영문학상, 2001년 현대문학상
- 2004년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2006년 지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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