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충
최 동 은
열여덜에 시집와서 배운 담배라 처음엔 가심울렁증으로 시작됐제 지천으로 꽃이 피어도 어지럽고 등신축구 같은 서방을 보면 더 어지러웠제 자꾸 뱃속이 미식거려 토하기 시작했니라 얼라를 밴 것도 아닌데 하늘이 노오래 안마당 빙빙 돌다 쓰러졌제 토하고 토해도 뱃속에선 그 무신 몹쓸 것이 자꾸 뭉치며 자랐제 느티나무 밑에서 내 허연 손목을 잡아본 돌팔이가 내린 병명이 회충이라데 그 지다랗고 흐여멀건 대가리와 꼬리가 똑같은 징그러운 놈 안있나 목구멍을 넘어올 듯 넘어올 듯 넘어오지 않고 낮에 몰래 먹은 막걸리 누릉내만 올라왔제 끝내 똥물을 올리고 노란 하늘을 뒤집어쓰고 나자빠진 다음에사 느그 할배 담뱃불을 댕겨줬제 돌팔이도 때론 명의보다 낫능기라 한 모금 빨아댕길 때마다 우글거리던 뱃속이 가라앉았제
푸후우……
느그 할매가 고방 문 열고 쌀독 열어볼 때마다 담배 연기는 독해졌제 도둑년 서방질 한다고 고방 문을 잠글 때면 시뻘건 담뱃불로 가슴 속을 지져댔제 연기는 문틈을 빠져나가 울타리를 넘고 개울을 건너 앞산으로 단숨에 날아갔든기라 그때마다 목구멍이 타 들고 입술 더 시꺼매졌제 청솔가지 탁탁 튀는 아궁이 앞에서 피는 담배 맛이 제일 좋았제 버얼건 아궁이 속으로 불길 빨려 들어가고 독한 담배 연기도 빨려 들어가고 아랫도리가 뜨뜻했제 사나워지는 불길 바라보며 꽁초를 아궁이 깊숙이 던져넣었제 긴 한숨이 활활 타곤했니라
참 희한한 일이제 가슴 속이 돌덩이인데 왜 배를 잡고 그리도 구불었는지…
- 월간 『현대시학』 2008년 7월호 발표
최동은 시인.
- 2002년 계간 《시안》등단.
- 201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 시집; 『술래』2013, (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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