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함께 배영옥 르네 마그리트의 마그네틱 사과 한 알 현관문에 붙여놓고 나는 날마다 사과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사과의 허락도 없이 문을 따는 사람 나는 이제 더 이상 과수원집 손녀가 아니고 사과도 이미 그때의 사과가 아닌데 국광, 인도, 홍옥……처럼 조금씩 존재를 잃어가는 사람 사과의 고통은 사과가 가장 잘 안다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럼에도 매번 피어나는 사과꽃처럼 봄이면 내 어지럼증은 하얗게 만발하곤 하지만 나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한 번도 빨갛게 익어본 적 없는 사람 내가 사과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건 사과의 눈부신 자태 때문이 아니라 사과 이전과 사과 이후의 고통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나는 날마다 사과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 할아버지도 르네 마그리트도 방문하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