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 - 김기택 나뭇가지들이 갈라진다 몸통에서 올라오는 살을 찢으며 갈라진다 갈라진 자리에서 구불구불 기어 나오며 갈라진다 이글이글 불꽃 모양으로 휘어지며 갈라진다 나무 위에 자라는 또 다른 나무처럼 갈라진다 팔다리처럼 손가락 발가락처럼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듯 갈라진다 태곳적부터 갈라져 있는 길을 거역할 수 없도록 제 몸에 깊이 새겨져 있는 길을 헤아릴 수도 없이 가보아서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듯이 갈라진다 제 몸통으로 빠져나가는 수많은 구멍들이 다 제 길이라는 듯 갈라진다 갈라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조금 전에 갈라지고 나서 다시 갈라진다 다시다시다시 갈라진다 갈기갈기 찢어지듯 갈라진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쉬지 않고 갈라진다 점점 가늘어지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