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 이경림 영옥이 도착한다 한권의 책으로 한 쪽의 표지로 몇 쪽의 갈피로, 옆인 듯 앞인 듯 획 돌아보는 듯 희미하게 웃는 듯 볼이 통통한 영옥 눈이 매혹적인 영옥 머리칼이 칠흑인 영옥 배경은 검은 숲, 회백색의 개울, 그 건너 뽀얀 몽돌 밭 그러나 영옥은 어디 갔나? 갈피 속의 영옥은 잠깐의 쿠바, 어느날의 광화문, 막 지나가는 연신내 부산, 대구, 비 추적대는 날의 왕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늙은 의자, 어색한 술자리, 시 그 무엇보다 깊은 不治 영옥은 무엇인가? 맨발로 구만리 심해를 헤매는 눈먼 물고기?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조약돌? 그 파문에 잠시 저희끼리 몸 비비는 물풀? 영옥은 도착한다 지금 막 없는 순환열차를 타고 없는 역에 슬쩍 내려 장검처럼 번쩍이는 햇살에 아득히 미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