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주유소 채호기 길은 어둠으로부터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다. 충혈된 눈처럼 불 밝힌 주유소 어둠 속에 꽃처럼 피어있다. 길 위의 인생, 심장에 휘발유를 주유하는 곳. 발작처럼 명멸하는 빛 아래 텅 빈 직선 도로 같은 인생은 전모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절망 같은 것. 스쳐 지나고 마는 희망 같은 것. 그리고 이제 시한부처럼 남은 건 어둠 속으로 눈뜬 채 적막을 불러들이는 주유소. 적막의 도로, 적막의 잡초 적막의 나무, 적막의 간판 적막의 네온, 적막의 주유대 그리고...... 그리고 절망의 웅크린 그림자들.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은 여명과 강인한 희망 같지도 않은, 그러나...... 지하 저장탱크의 기름처럼 매복한 희망들. 출처; 《문학사상》1996년 11월호에서 시집; 《지독한 사랑》《슬픈 게이》《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