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식으로 - 박해성 나는 지구 밖에서 왔다. 눈뜨고도 꿈을 볼 수 있으며 빗줄기에서 신의 긴 문장을 읽어낼 수도 있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한때 나는 지금은 몰락한 명왕성의 무사였다. 근친혼으로 지켜낸 순정한 제왕의 피는 쉽게 끓어 넘치거나 너무 차가운 게 흠이었다. 한번은 토성에서 탄소포인트제를 협상하고자 보낸 후작을 이교도라는 이유로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지구인의 화성 침공 계략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므로 우주연맹은 비상시국이었다. 나는 우주선에 열광하는 지구인들의 명단을 확보하라는 첩보임무를 띠고 그 별을 떠나왔다. 그날 실연으로 목을 맨 한 동료는 유성을 타고 나보다 먼저 이 땅에 도착해 있었다. 포보스 외신을 사칭하는 자들은 테베의 무녀가 그 사내의 변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