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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 6회 이상문학상 수상 <보고싶은 오빠> 외 4편 - 김언희

heystar 2013. 11. 22. 13:48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년도 넘었어난 저  개가 신기해오빠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끊어질 듯이 울어대는 아이를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오빠찍 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 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층층이  찍 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찍 소리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가 됐나 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오빠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변기를  두른  선홍색  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싸게 만들어, 하느님도 오줌을 싸실걸,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 계간 『창작과 비평』 2012년 겨울호 발표

 

 

   수상작은 「보고 싶은 오빠」외 4편으로 심사위원(이승훈, 박의상, 송준영)들은 “인간과 삶의 모순을 언어적 유희와 역설로 표현함으로서 시적 구제(詩的 救濟)를 꾀한 에로와 그로테스크 미학의 수작”이라고 평했다.

 

  김언희 시인은 1953년 진주에서 출생했다.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트렁크』(세계사, 1995)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뜻밖의 대답』(민음사, 2005),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등의 시집을 펴낸 바가 있다.  2004년 박인환 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보들레르'라고 소개하고 싶을 만큼 등단 이후 김언희 시인의 시 세계는 '불쾌한, 추잡한, 요망한, 혐오스러운, 매스꺼운, 노골적인, 거침없는, 더러운, 지긋지긋한, 끔직한, 기괴한……' 이런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그녀의 시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힘이 절로 흘러 넘치면서 한없이 부패한 현실의 단초를 날카롭게 폭로했다.
  뿐만 아니라 김언희의 시들은 내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에로틱하고 외설적인 부분과 욕설 또한 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이게 시인가'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런 시어를 쓸 수 있을까?' 란 의문이 생길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트렁크』의 낯섦과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의 충격을 넘어 『뜻밖의 대답』의 강렬함을 남겨준 김언희 시인이 늘 그렇듯 일상적이면서도 만만한 단어들과 함께 너무 ‘시적’이지 않아서 당혹스러울 만큼의 비속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표현했던 그녀의 시집들은 당시 우리 나라의 문단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시를 써내기엔 그녀의 주위 환경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극히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문학이라는 형태의 빌린 고문대요 형틀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조롱하고 사회를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시. 그러면서도 아무런 알리바이도 마련해두지 않은 벌거숭이 상태 그대로의 시. 그래서 끝내 넌센스의 벼랑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시. 다시 말해서 시가 아닌 시인 것이다.

   <이상시문학상>은 천재시인 이상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키며 선불교적 감성과 사유를 지향하는 시인에게 주어지며, 지금까지 이승훈, 정진규, 송찬호, 박의상, 송재학 시인이 수상한 바가 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4일 오후 5시30분 서울 신사동 유심문화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출처]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