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강정, 노을
이생
장독(杖毒)이 터졌는갑네
주저앉은
저 바다
외면하는 세상도
가슴은 저리 붉어
강정천 어린 물빛만
까맣게 울고 있다
내몰릴 곳 더는 없어
섬은
섬으로 산다
냇깍을 오르던 목숨
흩어버릴 꽃불 앞에
구럼비 너럭바위와
귀먹은 섬이 운다

[차상]
봄, 제주
류현서
초록물 드는 제주 축제가 있나 보다
퇴적층 제기마다 갓 쪄낸 팥 시루떡
한라산 아침안개는 향불 피워 오르고
유채밭 다문다문 부침개를 부쳐대면
뽀얗게 눈을 묻혀 곶감 한줄 내는 동백
우도는 되새김하다 송아지를 부른다
대향*이 화폭 삼은 서귀포 바닷가는
현해탄 건넌 아내 갈매기가 대신 울고
못다 쓴 편지 한 장을 추사체로 쓰고 있다
* 화가 이중섭의 호
[차하]
자취방의 자취
이나영
비어 있는 우유 통에 바람 저만 숨었는지
물기 마른 싱크대가 쇠구슬 소릴 낸다
벗겨진 구두 한 짝이 그 음향에 귀 모으고
뻣뻣한 마음결에 부르르 떠는 손전화
이미 반은 말라 있는 꽃다발을 추억하며
닫혔던 수도꼭지를 열어보는 저녁 한 때
[이달의 심사평]
시조 형식을 벗어난 자유시 형태의 응모작이 많았다. 짧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격의 시조는 자수 개념으로 ‘초장 3/4/3(4)/4, 중장 3/4/3(4)/4, 종장 3/5/4/3’을 기본형으로 1~2자의 가감이 허용되는 율격 구조를 지닌다. 백일장이니만큼 이러한 율격에서 벗어나면 먼저 심사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응모 시 이 점을 특히 유념하길 바란다.
이번 달엔 이생의 ‘강정, 노을’을 장원에 올린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갈등을 겪고 있는 강정마을의 아픔을 붉게 타는 노을에 빗댄 작품이다. ‘주저앉은/저 바다’ ‘어린 물빛만/까맣게 울고 있다’ ‘귀먹은 섬이 운다’ 등에서 섬과 바다의 숙명을 눈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연히 차상 작품도 제주가 배경이다. 류현서의 ‘봄, 제주’는 ‘유채밭 다문다문 부침개를 부쳐대면’에서 볼 수 있듯 제주의 봄 풍경을 감각적으로 담아내면서 화가 이중섭의 눈물, 추사의 정신까지 담아낸다. 차하는 이나영의 ‘자취방의 자취’를 뽑았다. 젊은 대학생다운 감각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많은 수의 작품보다 압축된 3편 정도의 응모가 바람직하겠다. 다음 달엔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권갑하·강현덕(대표집필 권갑하)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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