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한 켤레
문 제 완
잠이 깬 새벽녘에 물끄러미 바라보니
현관 쪽 신발들이 제 멋대로 잠들었다
고단한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시늉이다
늘 그렇게 아옹다옹 하루를 부대끼다
저들도 가족이라 저녁에 모여들어도
서로가 지나 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
오고 가는 내 모든 길 묵묵히 따르느라
굽도 닳고 끈도 풀린 가여운 내 아바타여
부푸는 밤공기를 안고 나처럼 누웠구나
- 방통대 국어국문학과, 전남대 행정대학원 졸 - 제8회 광주광역시 시인협회 백일장 장원 - 현: 화순 능주우체국(국장) - 전남순천출생
- 제12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 최우수상 수상.
[심사평] 서정의 진경과 흥미로운 상상력
여전히 시가 ‘금’이 되지 않는 오늘의 시대에도 신춘문예를 서성대는 영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물질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문학이 위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주신춘문예 역시 예년에 비해 작품의 양과 질이 부쩍 늘었음을 밝힌다.
사유는 서정의 살이요, 서정은 사유의 힘줄이라서 우리 몸속에 거부감 없이 들어와 말의 개념을 정당화하고 언어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번 심사도 주제의 밀도와 짙은 서정성에 바탕을 둔 작품을 눈여겨보며 인생의 애환을 통해 서정의 진경을 얼마만큼 담아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진주와 남강, 비봉산의 가을 정경을 팔검무로 묘사, 시조의 장과 장을 퉁소가락처럼 뽑아낸 김재길의 <새벼리 戀歌>, 하루 종일 우리의 정신과 몸을 고스란히 이끌고 다니는 신발이야기를 풀어낸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 섬 島를 악보의 음표, 으뜸음자리와 높은음자리 ‘도’로 빗대어 다시 어머니의 무량한 사랑으로 거듭 앉힌 서상규의 <섬의 수의>, 폐지를 수거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초로의 사내를 통해 연민과 암울한 현실 세태를 짚어낸 이우식의 <빙벽氷壁>, 낡았으나 비루치 않고 해졌으나 허술치 않은 섬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관조의 자세로 엮어낸 천유철의 <섬마을 여행길>,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는 환자의 투병기록 속에 혈육의 애틋함을 진솔하게 녹여낸 허은호의 <햇살 한때>가 최종으로 올랐다.(가나다 순)
작품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개성과 고른 호흡으로 심사에 상당한 고심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 중, 끝까지 따라와 선자들의 심금心琴을 튕긴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를 맨 윗자리에 놓았다. 온종일 주인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지나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는 아바타의 단호한 내면세계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사물의 실체를 바탕으로 하되 견고한 현실 감각과 자기심화과정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아울러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서정의 힘도 한 몫을 했다. 어딘가 불편함을 주는 시가 마침내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다량의 조미료 맛이 아닌, 토속적인 맛을 낸 작품이 시조의 미래를 지켜 가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다함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최종에 오른 다섯 분께도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자세로 용의 해를 열어가길 바란다.
- 심사위원 이승은(글). 강문신
'신춘문예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목수 요셉의 꿈> 이양순 (0) | 2013.01.01 |
---|---|
중앙일보 2012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바람의 각도> 김태형 (0) | 2012.12.21 |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0) | 2012.01.04 |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0) | 2012.01.03 |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0) | 2012.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