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heystar 2012. 1. 4. 13:33

            구름사촌

 

                     조 규 남

 

내 발도 하늘을 문질러본 기억이 있다
나무이파리처럼 시원하게 흔들리며
하늘에 발자국을 찍어본 일이 있다
바람이 건들대며 쓰다듬고 지나가면
구름도 덩달아 내 발을 슬쩍 신어보고 도망가던 자국이 자꾸 간지럽다
운동장 놀이기구에 몸을 기대고 물구나무섰을 때
아무리 참으려 해도 거꾸로 몰린 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쿵,
내려왔던 하늘이 되돌아가버리자
또 다시 땅을 딛고 온몸 받히며 살아가는 내 발
지금도 이파리가 되었던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누워 뒹굴면서도 무심히 하늘을 더듬어보고 걸어 다닐 때도
발꿈치를 들어올리며 바람 느끼고 싶어 들썩인다

대낮에도 통로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찔끔 훔치는 일도
최초의 천둥인 듯 크릉크릉 부르짖는 버릇도
내 속에 흐르는 구름의 피가 농간을 부리기 때문
 
발이 간지러운 가로수가 몸을 비튼다
아무리 걸어도 굳은살 한 점 박히지 않은
부드러운 초록 발,
수많은 발바닥 활짝 펴 하늘을 닦는다

죽어서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싶은 발
 

1951년 전남 보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발상의 신선함에 의견일치”

 

  예심에서 10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이름이 지워진 채 우편으로 보내온 본심 원고를 미리 읽고 심사위원 두 사람이 농민신문사에서 만났다. 예년에 비해 서정성은 강화되었으나 전반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똑같이 내놓았다. 그만큼 참신한 언어가 드물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선작을 고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선작을 <구름사촌>으로 하자는 의견이 곧바로 일치하였다. 이 시는 먼저 발상의 신선함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인간의 시선을 나무라는 자연의 시선으로 확장시키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시라는 게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아는 힘을 내장한 양식이라면 이 시야말로 물구나무서서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응모한 <옴마댁>의 ‘눈망울로 길의 태엽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는 빛나는 구절도 신인으로서의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까지 우리 손에 남은 <찔레차>는 ‘허기가 꽁무니까지 들어붙은 새들이 날아와 빨간 눈을 하나씩 몸에 달고 날아오른다’와 같은 감각적 표현이 일품이었지만 주제를 집약시키는 힘이 조금 부족해 보여 아쉬웠다. 또 다른 분의 작품 <깃털멧돼지>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발상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게 흠이었다. 사족 하나. 최종 심사 대상 작품의 표절 여부를 검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던 씁쓸함!

                                                             [심사위원] 이문재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안도현(시인·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