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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 관한 짧은 단상 - 송정란

heystar 2011. 8. 30. 16:08

 

                                       시조에 관한 짧은 단상

 

                                                                             송 정 란

 

 

  시조를 쓴다고 하면 주위에서 가끔씩 던지는 질문이 있다. 현대시조와 현대시가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느냐고. 물론, 다른 점이 매우 많다. 시조를 직접 창작해 보지 않고서는 그 세밀한 차이를 감지할 수 없다. 처음 시에서 출발한 나 역시 시조를 쓰기 시작한 1년 동안은 字數律(실제로는 音步律이지만)에 얽매여 시조의 참맛을 알지 못했다.

  마음대로 풀어 쓰다가 詩語의 자수에 제한을 받게 되니 표현하고자 하는 시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었다. 더구나 최소한의 의미 단위인 句와 句의 연결, 초·중·종장의 의미구조의 적절한 안배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자유시를 쓸 때와는 달리 작품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되었다. 시조의 율격이 족쇄처럼 자유로운 시상 전개를 죄어왔다. 그러나 조금씩 시조의 호흡에 익숙해지면서 그 운율의 멋스러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모든 시조시인들이 이러한 즐거움 때문에 창작에 몰입하리라 생각한다.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다른 점을 운운하는 것은 대부분 시의 내용에 대해서이다.

현대시조는 운율을 지키야 하는 것 외에 현대시의 표현 기법과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시를 쓰지 왜 시조를 쓰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시조를 꼭 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시와의 단 하나의 차이점, ‘운율’ 때문이다. 현대시는 내재율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시들은 대부분 산문화되어 있다. 즉 산문에 행만 띠었을 뿐인, 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소월이나 청록파의 전통적 율격을 전승한 시들은 지금 찾아볼 수 없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운율을 지켜야만 하는 시조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조의 운율은 앞서 말했듯 단순히 글자 수만 맞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와 구, 초·중·종장의 내적 율격까지 고려해야 한다. 외형적 율격만이 아니라, 내(용)적 율격이 시조 속에 숨어 있다.

  내적 율격은 작품의 내용 속에 용해되어 있으므로, 자유시를 쓰는 쪽에서는 이러한 형식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적 운율만 따지기 때문에 글자 수를 맞추기만 하면 시조의 형식을 갖춘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시조의 1句는 최소한의 의미 단위로 이루어져야 하며, 1章은 하나의 독립된 문장의 형태를 갖추어야 하며, 1首는 3장이 모여 통일되고 완결된 한 편의 의미 단위를 구축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초·중장에서 전개한 내용은 마지막 종장에서 완결시켜 주어야 한다. 현대시조는 단시조가 아닌 연시조가 많은데, 1수(자유시에서의 1연)는 독립적이고 완결된 의미로 끝나지만, 다음 수는 앞의 수의 내용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즉 각 수는 내용상으로 독립적이면서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자유시에서의 연은 다음 연과 유기적이지만, 그 연 자체가 독립된 의미 단위를 갖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시조의 1수(연)는 따로 떼어놓아도 그 자체로서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지만, 시의 1연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조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조는 이와 같이 형식과 내용 등 모든 부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율격이 있다. 따라서 시어를 절제하고 압축시켜야 하므로, 시조는 늘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가운데 자유로운 시상을 그 속에 풀어놓아야만 한다. 

  고정된 율격 속에 펼쳐놓은 자유로운 시상, 그것이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절제된 자유의 참맛을 시조에서 맛볼 수 있다. 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함축과 절제의 미를 시조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시조에 매료되어 창작을 하는 이유이다. 

  시란 그런 것이다. 늘 가까이 두어야지만 손이 능숙하게 움직인다. 내 마음이 지피는 바를 손이 저절로 알아서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과 손이 일치가 될 때, 본성에 가까운 시적 영혼과 시어를 만지는 이성적 작업이 하나가 될 때 한 편의 시를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일상적 삶에 얽매어 시를 잊어버리고 사는 때가 많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와 맞부딪치게 되면 어색해서 쩔쩔 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것이다.

  늘 만나는 사람과는 할말이 쌓여 있는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과는 오히려 할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시를 만났을 때, 온 영혼이 시를 향해 바쳐지던 그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시는 한번도 나를 멀리한 적도, 배반한 적도 없다. 내가 열정적으로 다가갈 때마다 그만큼의 뜨거움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시가 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그 때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국문과에 재직중이신 어느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현대시 수업을 하기 전에 시조 강의를 한두 시간 하는데,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시조 작품을 골라 오라고 했더니 나의 등단작이 그 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 작품(사설시조)이 현대시와 어떻게 다르냐며, 시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겠느냐는 질문이셨다. 

  ‘사설시조는 자유시다’ 라고 선언한 저명한 고전문학 전공 학자가 계시다. 사설시조를 시조가 아닌 본래의 장르(민요, 가사, 잡가 등)로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에 대두되기도 했다. 또한 사설시조가 시조의 형식과 완연히 다른 만큼 원래의 명칭인 만횡청류라는 독립된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설시조가 평시조보다 오히려 자유시에 훨씬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설시조는 이미 시조의 하위 장르로 굳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것이 과거에 어떤 식으로 출발하여 발전해왔든, 시조의 한 장르로 창작되어왔으며 지금도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시조의 다양한 표현기법과 장르적 발전을 위한다면 사설시조를 굳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사설시조의 창작은 되도록 삼가하고 있다. 자유시를 썼기 때문에 사설시조의 호흡은 처음부터 나에게 편안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을 때 사설시조는 1편뿐이었는데, 그것이 뽑혀 나왔다. 다른 작품들은 율격에 맞추느라 공을 많이 들였는데, 당선작은 오히려 단번에 쓴 사설시조였던 것이다. 내가 쓰고자 하는 바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사설시조가 시적 형상화에서는 더 성공했는지 모른다.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나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시조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시조시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정형률은 처음부터 나에게 족쇄처럼 느껴졌다. 율격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쓰다가 어떤 제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처음 1년간은 시조의 율격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단할 무렵까지 시조의 내적 율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글자 수에만 연연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1년이 더 흐르고 나서야 시조의 호흡이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시조의 율격이 가지고 있는 묘미도 이제 조금은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사설시조에 대한 유혹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시조에 매진하려고 한다. 시조의 정형적 율격이 내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재로울 때 사설시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질문을 해오신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내가 덧붙인 말은 이러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 되도록 사설시조를 쓰지 않으려고 해요. 평시조의 율격을 제대로 익힌 다음에나 쓰려구요.”

* 시조에 관한 짧은 단상은 3부로 되어있습니다. 3부를 생략하고 1부와 2부를 통합했습니다.

 

                                                                                           [출처]오승영 - http://blog.daum.net/anjalkr

송정란 - 1958년 경북 영주 출생.

1990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 당선.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경기대학교 문학박사.

시집 <불의 시집><화목><허튼층 쌓기> 등

건양대학교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팀 주임교수
건양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