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시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heystar 2022. 1. 11. 10:45

           경유지에서 

 

                                채윤희 

 

 

   중국 부채를 유럽 박물관에서 본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는

   딱정벌레 날개 위에 누워 있다

 

   한때 공작부인의 소유였다는 황금색 부채

   예수는 얼핏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약속의 땅은 그림 한 뼘

   물가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뿔 달린 짐승은 없다

 

   한 끝이 접혔다가 다시 펼쳐진다

   떨어진 금박은 지난 세기 속에 고여 있고

   사탕껍질이 바스락거린다

   잇새로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받아 적을 수 없는 소리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물총새 깃털을 덮고 잠든다

   멸종에 임박한 이유는 오직 아름답기 때문

   핀셋이 나를 들어올리고

   길이 든 가위가 살을 북, 찢으며 들어간다

 

   기원에 대한 해설은 유추 가능한 외국어로 쓰여 있다

   따옴표 속 고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파랑은 고결함이었고 다른 대륙에 이르러 불온함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던 한 끝 열릴 때

   나, 아름다운 부채가 되기

   열망은 그곳에서 끝난다


   채윤희  -1995년 부산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