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모란이 질 때
박해성
오월 어느하루 난설헌을 찾아간다
몰락한 친정 가듯 한 발 늦은 안부에
입술이 바짝 메마른
끝물 모란이 뚝뚝 진다
당신은 떠났어도 솔숲은 울울한데
기나긴 밤 울컥울컥 붉은 시를 토하시던
조롱 속 날개 상한 새
울음조차 스러지고
오늘은 서왕모와 깃털 수레 타러가셨나
한가로이 꽃을 꺾던 사내쯤은 아예 잊고
열 두 줄 햇살을 타는
초록이 창창하다
《정형시학》2020, 여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