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鄕歌remix - 황성희

heystar 2017. 11. 12. 14:17


         鄕歌remix

 

 

                               황성희 

 

 
 

달을 먹고 아기나 하나 더 낳아 볼까요?

하늘에 달이 하나도 없는 변괴가 일어난다면

하긴 요즘 세상에 그까짓 것 변괴 축에나 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솔가 따위 부르며 떼 지어 호들갑 떨지 않고

물소가죽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나 마시겠어요.

물소가죽이 들개가죽쯤으로 변한다면야 몰라도

몇 십 년째 세 들어 있으면서도 미치게 낯선

내 몸 만한 변괴가 어디 또 있을라고요.


아버지는 해만 뜨면 전화를 해

내가니애비다내가니애비다 주문을 외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란 건지

어머니는 해만 지면 전화를 해

내가니애미다내가니애미다 주문을 외고.


차라리 하늘 밖에 하늘이 또 있다고 하세요.

천당 지옥을 섬기고 염라대왕 옥황상제를 만나라고 하세요.

노래 좀 하는 애들 불러 혜성가나 한 두 마디 시키며 놀게요.


그러니 살아있는 이 변괴를 제발 좀 보세요.

낯이 설어 낯이 설어 미치겠는데

나는 눈가에다 아이크림을 잔뜩 찍어 바르고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거울을 보는 강심장을 가졌다고요.

사실 구지가는 이럴 때나 한 곡조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북아 거북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문 같은

머리를 제발 내밀어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널 찾아

평생에 평생에 평생에 찾아

소문만이라도 구워 먹고 말겠다.  

 

 

                                    - 웹진 『시인광장』 2007년 여름호


1972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200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엘리스네 집』(민음사, 2008)과 『4를 지키려는 노력』(민음사, 2013)이 있음.

현재 〈21세기의 전망〉 동인

 

 [출처]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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