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심사평] 공단의 생생한 겨울 풍경화 … 굴뚝 배경 이미지화 큰 울림
좋은 시조는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응모작에는 머리로 쓴 시조가 많았다. 시의 씨앗이 없는 것을 시조의 그릇에 가득 담아놓은 꼴이다. 또한 현대시는 이미지 묘사를 바탕으로 비유법을 적극 활용해야 관념에 빠지지 않게 되는데, 대부분 관념적 진술 방식의 시조가 많아 아쉬웠다.
이달의 장원은 깁갑주씨의 ‘굴뚝’에 돌아갔다. 공단의 굴뚝을 배경으로 그려낸 겨울 풍경의 이미지화가 돋보인다. 공단에 대한 풍경화의 과정을 통해 ‘화제는 세필로 총총 시국을 풀어’간다거나 ‘칼보다 예리한 붓끝 목울대를 파고든다’는 진술은 큰 울림을 만든다. 공단에서 연상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리는, ‘그리운 안부를 묻는 흘림체의 저녁 편지’로의 이미지화는 빼어나다.
차상은 조호연씨의 ‘장마’를 뽑았다. 관념적인 진술에 의존하는 4수 내외의 긴 응모작들에 비해 ‘장마’는 두 수로 짧지만 시조의 운율미를 살리면서 쉽게 풀어간 점이 점수를 얻었다. 세련된 수준은 아니지만 반복 어법으로 우리말의 맛을 살리려 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차하는 서희정씨의 ‘레가토’이다. 음과 음 사이를 끊지 말고 원활하게 연주하라는 음악용어를 시화(詩化)한 것이다. 함께 보내온 작품에서도 읽히듯 독특한 상상력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공석씨와 고경자씨의 작품도 오랜 논의가 있었으나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다.
백일장 응모의 경우 지정된 응모편수를 지킬 필요가 있다. 많이 보낸다 하여 가점을 얻는 것은 아니다. 또한 4수 이상의 긴 시조라 하여 심사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짧으면서도 선명한 이미지와 시조의 율격미를 잘 살린 작품을 빚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심사위원: 권갑하·박명숙(대표집필 권갑하)
◆응모 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