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달의 심사평]
비애에 갇힐 뻔한 삶, 담담한 시어로 승화
갑오년 첫 달을 여는 작품들을 기대 속에서 읽었다. 겨울은 시인에겐 축복의 계절이다. 살점을 찔러오는 차갑고 팽팽한 빛살, 혹은 언 땅에서 맹렬히 짓쳐오는 봄 전령의 빛깔도 시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손에 든 몇 편의 작품들은 그런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시조에 대한 고정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였다. 대책 없는 비애의 정조에 스스로를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꼭 이어가야 할 구절, 내뱉지 않으면 못 견딜 자신만의 시어들을 발현할 때 시의 생명은 살아난다. 시조는 진부한 슬픔이 아니고 빈혈의 상상력은 더더욱 아니다. 쾌활하고 진취적인 날 것의 냄새도 소중한 한 영역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달의 장원으로 용창선의 ‘겨울 수화(手話)’를 뽑는다. 역 앞에서 바쁜 수화로 말을 건네는 다정한 두 모녀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이 작품은 자칫 비애에 갇힐 위험이 있는 소재를 자신의 방식으로 담담히 시화하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실뜨기하듯 길을 여는 겨울 아침’이 꽃송이처럼 화사하다.
차상엔 강명수의 ‘정림사지오층석탑’이 차지했다.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에 선 오층석탑을 돌다 보면 ‘바람의 배꼽자리에 낙관’을 찍는 사람도 만날 수 있나 보다. 안정된 보법으로 장과 구를 잘 갈무리한 솜씨가 좋다. 다만 함께 보낸 작품들을 보면 역사유물 일변도의 소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시각을 다양화하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싶다.
차하엔 이종현의 ‘봉동리의 봄’이다. 봉동리는 개성공단이 위치한 마을이란다. 활기찬 재봉틀이 돌던 봉재공장은 녹슨 풍경이 되고 말았다. 생경한 시가 될법한 소재를 안으로 잘 다독여 결을 살려내었다.
이밖에도 강명수·박한규·정진상·이복열씨의 작품도 끝까지 논의됐지만 아직은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아 선에 들지 못했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오승철·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