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밀항 - 김요일
heystar
2013. 11. 13. 11:46
밀항密航
김요일
온대를 지나 열대로 가리
북회귀선 가로질러
리우 데 자네이로든, 자마이카든
당신이 정박하신 그곳
춥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혁명이나 낭만, 음악 소리마저 시들해져버린 아바나나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난다는 케이프타운도
썩 나쁘진 않아
비린내 나는 물과 나쁜 음식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리
구겨진 채로 엔진 기름 냄새 황홀한
어두운 선창船倉 바닥에 귀를 대고 누우면
깊고 차가운 바다의 푸른 음성
고래의 합창처럼 귓속으로 밀려들고
출렁이는 선창에서는 독주 한잔에도 취하는 법
소진된 고통과 유리 파편 같은 자책은 사랑 이후의 일
파도치며 흔들리며
꿈꾸며 꿈 깨며
언젠가는 그대 레이스 치맛단 같은 하얀 해안선에 당도하겠지
낮의 햇살은 한가롭고
모두가 평화롭게 취해가는 밤의 골목길이 있는 곳
북회귀선 가로질러 가리
당신이 정박하신 그곳
별빛을 바라볼 수는 없어도
항로를 벗어나지는 않으리
- 계간 『시인세계』 2008년 여름호 발표
1965년 서울 출생.
서울교대 음악교육과 졸업.
1990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붉은 기호등』(문학세계사,1994) 『애초의 당신』(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