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서울 - 서효인

heystar 2013. 7. 5. 16:36

          서울

 

 

                            서 효 인

 

 

 

여자는 구로의 미싱사가 되었다.

여자의 친구는 영등포에서 몸을 팔았다.

여자의 남편이 될 사람은 다리를 절었다.

그의 어머니는 고구마를 삶아 담아주었다.

그는 딱딱한 고구마 같은 여자와 연애했다.

여자의 어머니는 쳥계천에서 국수를 팔았다.

여자의 남자는 잘 익은 국수처럼 사라졌다.

딸은 미싱사가 되었다.

그는 성수대교와 청담대교를 만들었다.

여자의 손가락은 난지도에 버려졌다.

그는 다리를 절었다.

여자와 여자의 친구와 그는 단 한 번 함께 술을 마셨다.

여자는 술잔을 돌리듯 이사를 다녔다.

그는 아이 둘을 낳고 정관수술을 했다.

여자의 친구는 다리가 없는 섬으로 떠났다.

그의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미싱질을 그만두었다.

여자의 어머니가 죽었다.

여자가 집을 사고 집을 팔았다.

아이는 압구정동의 가방이 되었다.

아이는 가로수 길의 자동차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고구마를 택배로 보낸다.

여자도 아이도 친구도 고구마를 먹지 않는다.

여자는 국수를 먹지 않는다.

여자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사랑한다.

그는 유기농 생고구마를 씹으며 베란다에 서 있다.

아이는 베란다 아래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

여자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청담대교 위에 있다.

여자는 친구의 입을 미싱으로 막아버린 적 있다.

그들이 사는 도시는 다리를 절었다.

다리가 없는 섬에서 편지가 온다.

그들은 문맹이다.

편지가 버려진다.

서울을 벗어나면

이 일이 알려지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듯

다리에서 몇대의 자동차가

폭죽처럼

 

 

- 『시인수첩2013, 여름호에서

 

1981년 전남 광주 출생.

-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