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간단한 부탁 - 정현종
heystar
2013. 6. 9. 12:07
간단한 부탁
정 현 종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동이여!
전쟁을 계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여
저 사람들의 빈들거리는 산보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도록
내버려둬다오
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 2003. 정현종 시집 『견딜수 없네』에서
- 연세대 철학과 졸업.
- 1965년 《현대문학》 등단.
-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등.
- 수상;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네루다상 등.
-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와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