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에 관한 단상
사진/박해성
A4용지에 관한 단상
詩/ 박 해 성
그대,
늘 무표정한
백의白衣의 테러리스트
밀림 속 빗소리가 동공 깊이 배어있다
톱날에 이냥 버히던 비명이 덜 마른 걸까?
태양의 암호거나 바람의 진술 받아 적은
안태본 나이테며 새소리 다 풀어낸 몸
하 숱한 담금질 끝에 전생마저 토설하고
이승 반, 저승 반쯤 맨발로 넘나들던
순교자의 핏빛이다, 식물성 득음의 길
캄캄한 씨앗 하나가 공즉시색空卽是色, 하늘 여니
함부로 찢지 마라
대자대비 부처시다,
수라 같은 세속의 말 담담히 그러안는
그 가슴 어디쯤인가 사리 몇 과 영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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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프랑시스 퐁주는 말했다. “나무에서 나오는 방법은 나무를 통하는 길 뿐이다” 즉 내가 나무 그 자체가 되는 것 “그들(=나무)은 그들의 자태를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뿐”이라는, 내가 배운대로 정리하자면 "현상이 곧 시"라 말할 수 있다.
퐁주의 시를 공부하면서 나는 나의 詩作 태도가 인간이 아닌 대상, 즉 사물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인간적인 주관을 행사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는 곧 사물에 대한 인간의 고정관념이라는 걸 수긍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음을 고백한다. 또한 그의 지론을 어지간히 이해한다해도 현실적으로 시적 대상인 사물의 본질에 대한 객관적 접근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A4용지.....> 라는 졸작이 사물의 형태, 구조, 변화 등을 충분히 관찰하고 묘사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내게 글쓰기를 종용하는‘테러리스트’처럼 내 앞에 놓여있는 종이 한 장에서 그 원료인 나무의 본향을 상상하고 톱날에 베이던 통증이며 종이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 그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를, 하여 불교적 윤회까지의 연상 작용을 따라 사물의 실체에 닿으려 나무처럼 생각하며 쓴 작품이다. 그리하여 내가 조금 성장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을 발표하자 고명하신 어느 중견시인께서 리뷰를 쓰시겠다고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열고 보니 그 문학잡지에는 다른 시인의 작품이 실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몰랐으면 더 좋았을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