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포엠

몽자류 소설처럼

heystar 2012. 7. 4. 21:24

 

                                                                                                                                                           사진/박해성

 

 

 몽자류夢字類 소설처럼

 

                     詩/박 해 성

 

 

세잔의 정물화처럼 풍요로운 저녁 식탁

수도꼭지 비틀면 코카콜라가 쏟아지지

무너진 어느 왕조의 쓰디쓴 사약 같은

 

창 밖엔 그날다이 백기를 흔드는 눈발

절반쯤 놓쳐버린 외국영화 자막인 양

적멸의 ‘뉴 타운’에는 세월 그리 흘려놓고

 

때로는 목차에 없는 생이별도 아름답지

잘 벼린 비수 뽑아 자명고를 찢는 순간

천리마 말발굽소리 절정으로 내달리게

 

행간에 가위 눌린 독자여 안심하시라

한 세상 사는 일이 하룻밤 꿈인 것을

비장의 에필로그는 반전이다, 해피엔드!

 

뉘인가, 책장 덮고 비몽사몽 얼얼한 이

전생에 마신 화주火酒 이제 취기 오르는지

벼랑 위 철쭉꽃인 듯 네온사인 뭉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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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쩌다 글감을 잡으면 연애하듯 대책 없이 열병을 앓는다. 이는 습작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밤을 전쟁처럼 지새우는 일은 예사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하여 시를 “낳는다”는 말에 나는 100% 공감한다.

 

   오랜만에 습작시절에 쓴 애착이 가는 시 하나 골랐다. 이 작품이 탄생할 무렵에 나는 시와 시조 사이에서 장르적 갈등에 시달렸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했던가, 당시 등단도 하지 못 한 주제에 오늘의 시조가 과거 지향적이며 서정적 리얼리즘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가, 진부하다고 투정부렸다.

 

   그렇다고 자유시 쪽의 장황하게 늘어놓는 독백 같은 시라던가 무의미한 장난처럼 말로써 말이 많아 소통할 수 없는 난해한 시류에도 선뜻 동의할 수 없었으니,

 

   물론 어느 하나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자신의 무기력을 그런 식으로 변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경도 되어 데리다, 푸코, 라캉 같은 이들을 밤이 새도록 며칠씩 쫓아다니다 지쳐 잠들곤 했으니까…

 

   어쨌거나 이런저런 애증을 겪으면서도 나는 운명처럼 시조를 놓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으나 무엇이든 군더더기를 용납할 수 없는 나의 천성 탓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족이지만 이 작품은 모 신문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거론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심사 단평에 의하면 “풍부한 이미지와 시상의 범위에 호감이 갔으나 주제의 통일성을 잃은 아쉬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여 심사위원님께서 주제의 통일성을 간과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시건방진 우려에 나 역시 좀 아쉬웠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