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그리고 내시경
그림/박해성
봄날, 그리고 내시경
詩/박 해 성
저어할 틈도 없이 쳐들어 온 외눈박이
샅샅이 훑어간다
미증유의 게릴라작전
내 몸은 지금 수색 중, 부패의 배후를 캐는
후미진 비밀창고 자물쇠도 비틀어보고
시간의 백서를 읽는 눈빛 싸늘하건만
굴욕을 꿀꺽 삼킨다
무장해제 노병처럼
삶이 그리 만만한가,
숱한 경고 무시한 채
세속 온갖 잡동사니 다 끌안고 버티더니
비공개 자산목록이 결국 탄로 날 것인지?
늦게 핀 자목련이 시나브로 이우는 날
날개 없어 추락하는 꽃잎을 밟고 간다
불시에 선불 맞은 듯 환한 봄빛,
어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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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속이 쓰려 잠을 깬다, 아니면 잠이 깨서 통증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나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나의 위장은 지금 아프다.
여태껏 나는 나의 몸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다. 급할 때는 심장이 터지도록 채찍질했으며,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뼈마디가 주저앉도록 무거운 짐도 실었다.
생살이 찢어지는 정글이나 무릎께까지 푹푹 빠지는 열사의 사막쯤은 겁도 없이 맨발로 가로질렀다. 악어 떼가 우글거리는 늪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던졌으며 곧 눈알을 파먹을 것 같은 검독수리 떼가 허공을 배회하는 이름 모를 골짜기도 바람같이 건너왔다.
나는 내 몸이 내 것이라 믿고 내 맘대로 부리며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육체의 반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 처음에는 갑상선이 들고 일어났다. 그 다음엔 신장이 열 받았단다. 그 이름도 의학적인 갑상선기능항진증에다 신우신장염에다 꾀병 같은 최신식 섬유근육통까지 (나는 이 병으로 오른손이 자유롭지 않아 오랫동안 왼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 후 한 동안 잠잠했던 나의 몸이 요즘 다시 수상하다. 내가 그의 주인이 아니라 그가 나의 주인임을 증명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 그의 야심 찬 반격은 아닐까?
공복에 위내시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 놈의 꽃은 그리 야단법석 피었는지 울컥, 현기증이다, 나는 길가의 벤치에 앉아 지는 꽃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